_예수님의 말씀이 때로는 지나치게 꾸짖는 말씀으로 강하게 지적하는 말씀으로 다가올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복음을 전체적으로 성찰하며 묵상하다 보면 예수님께서 항상 본래적 자성을 보지 못하고 말씀의 진리 안에 머물지 않아 저질러지는 악들에 대해 성찰하고 회개하게 하여 본래적 하느님 자비성(慈悲性)으로 돌아가도록 늘 독촉하고 계심을 배울 수 있습니다.
_강렬한 꾸짖음만큼 한없는 자비심이 함께함을 묵상할 수 있습니다. 자비심이 없다면 그만큼 꾸짖음도 있을 수가 없습니다. 대개가 타협으로 빠져들기 때문입니다.

_말씀은 항상 이 자리를 깨어있게 합니다. 깨우기 위해서는 타협이 아닌 직선적 꾸짖음과 사람의 감정을 어루만짐이 아닌 오직 믿음의 진리성에 눈뜨게 할 뿐임을 묵성하게 합니다.

_예수님의 강렬한 꾸짖음을 통해 저희가 성찰해야 할 것은 나 또한 내 스스로가 내 스스로에게 오직 주님의 이름으로 꾸짖어야 합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하느님의 자비성에 대한 절대 믿음을 고백하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너무나 자주 자기 자신과 타협을 잘 합니다. 그리고 그 타협의 마음을 점진적으로 완고한 마음으로 바뀌고 결국 자기 자신의 아성이 되고 맙니다. 우리의 완고한 마음은 왠만한 충고로는 가슴에 와닿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계속 죄를 짓다가 어느 때가 될 때 아주 크게 맞습니다.

_말씀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말씀은 항상 삶의 빛이 되어야 합니다.

_오늘 복음(루카11,44)에서, ‘너희는 불행하여라! 너희가 드러나지 않는 무덤과 같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그 위를 밟고 다니면서도 무덤인 줄을 알지 못한다.’

_참으로 엄청난 말씀입니다.

_우리는 내 스스로가 얼마나 무딘 마음을 지녔는지도 모릅니다. 내가 얼마나 큰 죽음의 무덤을 안고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_예수님의 자비심은 지고하시기에 결국 우리의 무딘 마음을 열어 영원한 구원에 이르게 하시고자 당신을 십자가에 못박으십니다.

_제1독서 갈라티아서 5,24에서 사도 바오로는, ‘그리스도 예수님께 속한 이들은 자기 육을 그 욕정과 욕망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25절에서는 , ‘우리의 성령으로 사는 사람들이므로 성령을 따라갑시다.’라고 권고합니다.

<김우성 비오 신부>

 

[복음말씀]
<불행하여라, 너희 바리사이들아! 너희 율법 교사들도 불행하여라!>
__†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42-46
그때에 주님게서 말씀하셨다.
42 “불행하여라, 너희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는 십일조를 내면서, 의로움과 하느님 사랑은 아랑곳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한 십일조도 소흘히 해서는 안 되지만, 바로 이러한 것들을 실천해야 한다.
43 불행하여라, 너희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희당에서는 윗자리를 좋아하고 장터에서는 인사받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44 너희는 불행하여라! 너희가 드러나지 않는 무덤과 같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그 위를 밟고 다니면서도 무덤인 줄을 알지 못한다.”
45 율법 교사 가운데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스승님, 그렇게 말씀하시면 저희까지 모욕하시는 것입니다.” 하고 말하였다.
46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너희 율법 교사들도 불행하여라! 너희 힘겨운 짐을 사람들에게 지워놓고, 너희 자신들은 그 짐에 손가락 하나 대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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